잃어버린 정원

ⓒ 김태형​

잃어버린 정원

손을 뻗어 허공을 타고 오르는 듯하지만 덩굴은 그 무엇이든 붙잡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 햇빛을 넘어 어디로든 건너갈 수 있다면 손끝에 스쳐가는 바람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안개가 조금 더 딱딱했다면 그 모든 것이 되었을 것이다 바닥을 기어갈 수는 없기에 그럴 수는 없다는 듯이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그만큼에서 딱 멈춰 서 있다 비가 내리면 돌들이 반짝일 거라고 저녁별이 먼저 내려와 앉았다 갈 거라고 두 손으로 정원을 이루었지만 몇 자루 돌을 실어다 놓고 수천 개의 돌 속에 두 손을 묻어두었지만 한 해가 가고 다시 그리운 창가에서 보내온 비가 며칠 내렸지만 정원에는 돌과 침묵과 마른 가지와 간절한 두 손만 남았다 죽은 듯이 기다리겠다는 말은 죽은 듯이 기다리겠다는 말이니까 죽은 듯이 살 수는 없으니까 기다리겠다는 말이니까 죽은 듯이라도 살아야 하니까 기다려야 하니까 이제는 비가 내리지 않고 저녁별이 뜨지 않는다 이름을 잃어버린 빈 정원은 덩굴에 덮여가고 있다 아무리 기어오르고 뻗어나가려 해도 햇빛이 되고 바람이 되고 안개가 될 수는 없지만 정원은 정원으로 돌아가도 나는 죽은 듯이 기다리지 말라고 살아 있으려고 죽은 듯이 기다리겠다고 정원이 되어 있다​