바람놀이

ⓒ 김태형​

바람놀이

높은 절벽을 힘겹게 건너와서 그럴까

돌풍에 키 큰 유라크 나무가 휜다

대신 살구열매가 후두둑 골목에 떨어진다

급히 돌아가던 사내들이 다 익은 살구를 두 손 가득 담아 든다

아이들이 논두렁 위에서 바람을 타고 있다

골목에 앉아 있던 꼬마도 함께 놀아달라고 달려온다

바람이 등을 떠민다

가볍게 발꿈치를 들어 올려 뛰어오르면 아이들은 바람이 된다

옷깃이 날린다

후두둑 또 살구열매 떨어진다

바람이 되겠지 싶어도

제자리에서 바람을 타고 있을 뿐 바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다

어린 메밀처럼 발목이 가는 아이들은

얼굴을 바람의 뒤로 숨기지만

조금 큰 아이들은 한 팔을 바람에 걸치고 있다

등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지그시 돌려

뒤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을 건너다본다

한 팔이 들어 올려지고

작은 두 발이 가벼워지기를

바람을 맞으며 기다린다

아이들은 바람이 되지 않는다

추수 끝난 보리밭을

바람에 실렸다가 떨어지며 발끝에 디뎌지는 말랑말랑한 밭두둑을

아이들은 더 좋아한다

살구가 떨어지고

어른들은 서둘러 회당으로 들어가고

여전히 바람 속에 아이들은 몸을 실어 올리고

조금 더 크면 자기가 다 짊어지고 갈 노란 보릿단 앞에서​